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엥겔스 (문단 편집) === 양자 입양 === 카를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 마르크스 역시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무리한 부탁을 많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귀족 가문 규수였던 그녀는 마르크스와 결혼하기 이전 고향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미녀로 유명하였는데, 이러한 배경에서인지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씀씀이가 컸고, 엥겔스에게 눈치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마르크스가 영어로 대화는 가능해도 영어로 글을 쓰는데는 서툴렀기 때문에,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글을 영어로 번역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851년 마르크스가 미국 신문사 뉴욕 데일리 트리뷴로부터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해달라는 계약을 맺었을 당시에는 마르크스가 "고작 기사 쓰느라고 자신의 연구가 방해받기 싫다"며, 엥겔스에게 정기 기고를 '''대필'''해 줄 것을 부탁했고, 자신의 친구가 원고 마감을 잘 안지킨다는 것을 보아온 엥겔스는 친구 가족을 먹여살리느라 바쁜 와중에도 미국 언론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기고하였다.[* 너무 마르크스를 깎아내리고 엥겔스를 올려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매일같이 편지를 주고받던 사이였고, 엥겔스가 기고하는 기사 상당수는 마르크스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글감을 얻은 것이기도 했다.] 마르크스 부부는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엥겔스가 심지어 신문 기사까지 대필해준다는 것에 대해 별 고마움을 못느꼈는지, 한 번은 예니가 엥겔스에게 눈치도 없이 "우리 남편이 선생님이 쓴 기사로 미국 서부와 동부, 남부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은 적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엥겔스도 마냥 성인군자는 아닌지라 미국 신문에 대필한 기사들은 평소 그의 수준에 걸맞지 않게 다소 대충 쓴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엥겔스가 대필을 맡은 그해 카를 마르크스가 가정부 헬레네 렌헨 데무트를 임신시켰고, 그렇게 태어난 사생아 프레디를 예니 마르크스가 직접 편지를 통해 엥겔스에게 맡긴 것이다.[* 마르크스는 종종 엥겔스에게 돈 좀 달라는 편지를 써야할 때 상황이 좀 난감하다 싶으면 아내에게 대필시키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예니가 직접 나서서 편지를 썼는지 마르크스가 대신 시켰는지 알 길은 없다.] 엥겔스는 혁명 동지의 가정을 지킴으로서, 혁명의 대의를 지킨다는 결정 하에 비공식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생아의 친부가 되어주고 그 얘기가 자신의 세례명을 쓰는 것을 허용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엥겔스의 명예는 훼손됐다. 즉, 프레디[* 프리드리히의 영어식 이름 프레더릭의 애칭]의 생부는 엥겔스로 알려졌고, 이 때문에 엥겔스는 주변인들로부터 많은 놀림을 받아야 했다. 아무리 엥겔스가 사람이 착하다고 해도 이는 도가 넘는 일이었다. 이런 까닭에 엥겔스는 프레디를 냉담하게 대하곤 했다. 프레디는 커서 재단사와 선반공 일을 하며 살게 된다. '''마르크스의 딸 엘리노어(투씨)는 주변인들에게 따뜻했던 엥겔스 선생님이 왜 유독 자신의 아들에게 냉담했는지 의아해하곤 했는데, 엥겔스가 임종하는 자리에서 프레디는 사실 마르크스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고백하자 경악한다.''' 엥겔스는 친구 때문에 여생을 “사생아를 낳고 냉담하게 대하는 나쁜 아버지”라는 오명을 감내하게 되었는데, 이 스캔들은 엥겔스가 친구를 보호하고 사회주의의 진군을 촉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했는지는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엘리노어는 프레디와 남매처럼 지내면서 프레디의 정신적 고통을 보상해주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고 한다.[* 여담으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부르주아 남성들이 가정부 사이에 사생아를 두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았다.(출처: 도널스 서순의 유럽 문화사) 대개 이런 경우에는 가정부가 임신하자마자 멀리 내쫓고 나몰라라 하는 방식으로 사건 수습이 이루어지곤 했는데, 마르크스가 사생아를 친구 아들로 둔갑시킨 것은 엄밀히 말하면 예니 책임보다는 마르크스가 가정부와의 옛 정을 못 잊어서 그런 것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마르크스가 사망하기 직전 당시 가정부 데무트가 마치 어머니가 자식 돌보는 듯한 태도로 마르크스의 병수발을 들었다 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